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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2023.11.08] [김범준의 옆집물리학] 기후위기와 인류의 미래
2023-11-14경향신문 2023년 11월 8일에 실린 기사 발췌 출처: https://www.khan.co.kr/opinion/column/article/202311082023015 지난 11월2일 우리나라 전역의 날씨는 마치 초여름 같았다. 무려 30도에 가까운 낮 기온을 보여준 곳도 있었고, 그날 하루 중 최저 기온이 1907년 시작된 우리나라 기상 관측 116년 역사에서 가장 높았던 곳도 여럿이다. 우리나라뿐 아니다. 올해 전 세계 곳곳에서는 이상 고온, 홍수, 그리고 대규모 산불 등의 자연 재해가 그치지 않았다. 기온이 상승하면 숲의 나무가 머금고 있는 액체 상태의 물은 기체인 수증기로 변해 나무에서 대기로 옮겨간다. 해가 떠 온도가 높아진 한낮에 아침 이슬과 안개가 사라지는 것과 정확히 같은 원리다. 결국 대기의 기온이 높아지면 숲이 건조해져 산불 규모가 커진다. 기온 상승으로 대기가 더 많은 수증기를 머금으면, 당연히 강수량이 늘어 홍수 피해가 커지고, 당연히 에너지가 커져 태풍 피해도 커진다. 태풍, 홍수, 산불의 규모는 지구의 기온 상승과 함께 커진다.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명백한 과학적 사실이다. 10월23일 뉴욕타임스에 실린 기후과학자 하우스파더(Z Hausfather)의 글에는 1850년대 이후 매년 바다의 월평균 온도 변화의 추이를 보여주는 그래프도 담겨 있었다. 올해 9월 평균 온도는 산업화 이전과 비교해 1.8도 더 높았다. 작년까지의 신기록이었던 1.3도가 1년 만에 1.8도로 훌쩍 높아졌다. 올해는 과거 2000년의 기간 중 가장 뜨거운 해로 기억될 것이 확실하다. 더 큰 걱정이 있다. 최근 15년 정도 안에 일어난 기온 상승은 그 이전보다 더 가파르게 일어나고 있다. 여러 기후학자가 마지노선으로 합의한 산업화 이전 대비 지구 평균 기온 1.5도 상승은 이제 먼 미래의 일이 아니다. 하루 안에도 10도 정도 오르내리는 매일의 기온과 비교하면 1.8도가 큰 값으로 느껴지지 않는다는 사람이 많다. <기후를 위한 경제학>의 저자 김병권은 강연에서 지구의 평균 기온을 우리 몸의 체온에 비교해 볼 것을 권했다. 체온이 몇 도만 올라도 우리는 해열제를 먹고 응급실로 간다. 지구 평균 기온도 마찬가지여서 몇 도만 올라도 회복이 어려운 피해가 생길 수 있다. 게다가, 감기에 걸린 사람 체온은 며칠 뒤면 내려가지만, 현재 지구의 높은 체온은 앞으로가 더 걱정이다. 기온 상승을 늦추거나 되돌리는, 해열제 복용에 해당하는 기후 위기 대응 노력이 턱도 없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지구의 기온은 앞으로 한동안은 계속 높아질 것이 확실하다. 지금은 명백한 기후 위기의 시대다. 지구가 지금 심한 몸살감기를 앓는다고 할 수도 있지만, 사실 지구는 무탈하다. 오랜 지질학적 규모의 시간에서 지금보다 기온이 높았던 때도, 대기에 산소가 없던 때도 있었다. 현재의 기온 상승으로 심각한 위기에 맞닥뜨린 것은 지구가 아니라 인간이다. 보이저 1호가 촬영한 사진 ‘창백한 푸른 점’을 떠올린다. 우주를 떠다니는 예쁜 우주선 ‘창백한 푸른 점’호의 좁은 내부 공간을 우리는 그간 무한한 크기로 여겼다. 얼마든지 가져다 쓸 수 있는 무한한 자원이 저 작은 점 안에 있으며, 우리가 무얼 해도 이 작은 우주선이 아무 영향을 받지 않으리라 여겼다. 지구의 기온을 올린 것도 우리고, 현재 생존의 위기를 맞고 있는 것도 우리 인간이다. 기후 변화의 이해는 과학의 문제지만, 기후 위기에 대응하는 것은 결국 사회와 정치의 문제다. 기후 위기의 시대를 맞아, 우리가 바라는 미래를 상상해 현실에 구현하는 것은 결국 우리 인간의 노력에 달렸다. 아무리 작은 숫자여도 일정한 경제 성장률이 앞으로 계속 이어지면 경제 규모는 무한대를 향해 발산한다. 하지만, 유한한 작은 지구에서 인구가 무한히 늘 수도 없고, 우리 인간이 무한히 많은 양을 소비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너무나도 자명한 수학적 결론이다. 그렇다면, 경제 성장이 없어도 모두가 행복하게 살아가는 세상이 우리가 생존을 이어갈 수 있는 먼 미래의 유일한 모습이다. 산업혁명 전의 과거로 돌아가자는 얘기가 아니다. 앞으로도 생산성은 끊임없이 증가하겠지만, 줄어들 총 노동의 양을 1인당 노동 시간을 줄여 해결하면 일자리가 줄어들 필요도 없다. 걱정스러운 기후 위기의 시대에 나는 거꾸로 더 나은 미래를 꿈꾼다. 1인당 노동 시간이 0으로 수렴하는 미래, 하루만 일하고 364일은 책 보고, 영화 보고, 가족과 산책하는 먼 미래를 꿈꾼다. 얼마나 버는지가 아니라, 얼마나 행복한지가 경쟁의 잣대가 되는 미래를 꿈꾼다. 김범준 성균관대 물리학과 교수
[경향신문 2023.10.11] [김범준의 옆집물리학] 새가 낮게 날면 비가 온다
2023-10-18경향신문 2023년 10월 11일에 실린 기사 발췌 출처: https://www.khan.co.kr/opinion/column/article/202310112048035 어린 시절 제비는 흔히 볼 수 있는 새였다. 친구들과 골목에서 놀다 보면 제비가 낮게 날 때가 있었다. 비가 올지 모르니 빨리 집에 가라는 동네 어른 말씀에 뜀박질을 시작하면 정말로 곧 소나기가 쏟아지고는 했다. 새가 낮게 날면 비가 온다는 것은 오랫동안 누적된 경험으로 우리 선조가 파악한 상관관계다. 하지만 새가 낮게 날기 ‘때문에’ 비가 오는 것은 아니다. 상관관계가 사실이라고 해서 하나가 다른 하나의 원인인 인과관계를 뜻하는 것은 아니다. 한 나라의 노벨상 수상자 숫자와 초콜릿 소비량 사이에 상당히 강한 상관관계를 보여주는 그래프를 본 적이 있다. 물론 이것도 인과관계는 아니다. 우리나라에서 과학 분야 노벨상 수상자가 아직 없는 이유가 한국인이 초콜릿을 적게 먹기 때문일 리는 없다. 새가 낮게 날아 비가 온 것도 아니고, 초콜릿 많이 먹어 노벨상 타는 것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서 상관관계 자체가 근거가 없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명확히 관찰된 상관관계의 배후에는 이를 만들어내는 합리적인 근거를 찾을 수 있을 때가 많다. 우리 눈에 투명해 보여도 지구의 대기 안에는 수많은 기체 분자가 있다. 이들 기체 분자들도 질량이 있어 손에서 놓은 돌멩이처럼 지구 중심 방향으로 중력을 받는다. 기체분자들은 마치 양파 껍질처럼 둥근 지구를 둘러싸 켜켜이 쌓이고, 대기의 압력은 지면으로부터 위로 오를수록 줄어든다. 한편 지구의 기상현상으로 한 지역의 대기압이 주변 지역의 대기압보다 낮을 수 있다. 주변의 사방에서 지면을 따라 수평방향으로 저기압 지역으로 유입된 공기는 옆 방향으로는 어디 갈 데가 없으니 지면의 수직방향으로 위로 솟아오른다. 저기압 지역에서는 기압이 낮다는 바로 그 이유로 대기가 위로 상승하고, 위로 오르면서 대기의 온도가 낮아진다. 온도가 낮아지는 새벽에 이슬방울이 맺히고 안개가 피어오르는 것과 같은 이유로, 상승하며 온도가 낮아진 대기는 머금을 수 있는 수증기의 양이 줄어 액체상태의 작은 물방울들이 형성된다. 고기압이 아닌 저기압 지역의 상공에 비구름이 형성되는 이유다. 결국 저기압지역에서 강수 확률이 더 높다. 달에서는 드론을 날리지 못하지만 화성에서는 가능하다. 하지만 지구에서 잘 나는 드론도 화성에서는 잘 날지 못한다. 지구, 화성, 달에서 드론이 다르게 나는 이유는 대기의 압력이 다르기 때문이다. 대기가 없는 달에서는 드론을 띄울 수 없고, 화성에서는 중력이 지구보다 작지만 대기가 무척 희박해 날개의 회전속도가 상당히 빨라야 드론이 난다. 헬리콥터형 화성탐사 드론인 인제뉴어티의 날개 회전속도가 무려 분당 2400번인 이유다. 곤충과 새도 하늘을 비행하기 위해서 공기를 이용한다. 드론이 화성에서 날기 어려운 것과 같은 이유로, 곤충과 새도 저기압에서는 날기 어려워진다. 결국, 저기압 지역의 곤충과 새는 가능한 지면 근처에서 날게 된다. 높은 곳으로 오르면 안 그래도 낮은 기압이 더 낮아져 나는 것이 더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결국 한 지역이 저기압이 되면 그곳에서는 곤충과 새들이 낮게 날고, 그곳에서 비구름도 더 쉽게 형성된다. 저기압과 새의 저공비행, 저기압과 높은 강수확률은 각각 짝을 지어 인과관계로 연결되고, 새의 저공비행과 높은 강수확률은 저기압을 매개로 해서 강한 상관관계를 보이게 된다. 새의 저공비행이 비를 내리는 원인이라는 얘기가 아니다. 새를 줄에 매달아 억지로 높이 날지 못하게 해 비를 내릴 수는 없다. 노벨상 수상자 수와 초콜릿 소비량 사이의 상관관계도 그리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 있다. 경제수준이 높은 나라가 아무래도 기초과학 발전에 더 큰 예산 지원을 할 수 있을 것이 분명하고, 초콜릿처럼 안 먹어도 그만인 기호 식품의 소비도 그 나라의 경제수준과 양의 상관관계가 있을 것이 분명하다. 결국, 초콜릿 많이 먹어서 노벨상을 타는 것은 아니지만, 둘 사이의 강한 상관관계를 경제 발전 수준을 매개로 해서 합리적으로 설명할 수 있다. 새가 낮게 날면 비가 오지만, 초콜릿 많이 먹는 과학자가 노벨상 타는 것은 아니다. 초콜릿 소비 진작보다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하는 훨씬 더 나은 방법이 있다. 바로, 기초과학에 대한 충분한 지원이다. 기초과학에 대한 긴 안목의 장기적 지원이 줄어들면 노벨상 수상이 더 어려워진다는 것은 따로 설명할 필요도 없는 명확한 인과관계다. 지원이 줄면 미래의 과학자가 줄고, 과학자가 사라지면 과학은 없다.
[경향신문 2023.09.13] [김범준의 옆집물리학] 그동안 감사했어요
2023-09-21경향신문 2023년 9월 13일에 실린 기사 발췌 출처: https://www.khan.co.kr/opinion/column/article/202309132013015 2024년 정부 예산안에 따르면 과학기술 분야의 R&D 예산이 16.6% 줄어들게 된다. 산업 발전에 즉각적인 도움을 주기 어려운 순수기초과학 분야의 연구는 거의 대부분 기업이 아닌 정부의 지원을 받아 이루어진다. 예산 삭감으로 가장 먼저 큰 타격을 받을 분야가 기초과학이다. 김범준 성균관대 물리학과 교수 기초과학 분야 연구자가 연구계획서를 한국연구재단에 제출하면, 계획서의 내용을 심사할 같은 분야의 전문 연구자들이 심사자로 선정된다. 힉스 입자 이론 연구를 하겠다는 과제를 나와 같은 통계물리학 연구자가 제대로 심사할 수는 없다. 결국 통계물리학 분야 연구과제는 주로 통계물리학자가, 입자물리학 분야 연구과제는 주로 입자물리학자가 심사한다. 아니길 바라지만, 요즘엔 이런 것도 카르텔이라 부를지도 모르겠다. 심사자들은 계획서를 익명으로 평가해 지원 대상 과제 선정에 도움을 준다. 지원 대상 과제로 선정되면 매년 연구비가 소속 대학에 입금되고, 미리 제출한 예산안에 따라 증빙 서류를 갖춰 연구비가 집행된다. 접수된 연구과제 중 얼마나 많은 과제가 선정되었는지, 그 비율을 과제 선정률이라 한다. 올해 과제 선정률은 이전보다 줄었다. 2023년 예산이 2022년 수준과 비슷하다는 게 알려졌을 때 예상한 일이다. 과거 한동안 늘어난 예산으로 신규과제 선정이 많았고, 이들 과제들은 앞으로도 몇년 예산이 계속 투입되므로 신규로 선정할 수 있는 과제 수가 줄어들 수밖에 없다. 예산이 동결되어도 한동안 신규과제 선정률이 낮아지니, 예산이 대폭 삭감되면 내년 선정률은 더 줄어든다. 게다가 탈락한 연구자가 이후 다시 지원하므로, 지원자 숫자는 누적적으로 늘어나 선정률은 더욱 낮아지게 된다. 2024년 과제 선정률은 올해보다도 훨씬 더 낮아질 게 분명하다. 만약 과제 선정률이 5~10% 정도라면, 연구를 하고자 하는 연구자 10~20명 중 1명만 연구비를 받을 수 있다는 뜻이다. 한국에서 교수의 삶을 시작한 이래로 20여년, 국가에서 지원하는 연구비를 못 받은 적은 없었다. 정말 감사한 일이다. 컴퓨터 말고는 실험 장비가 딱히 필요 없는 이론물리학 분야에서 연구비의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대학원생 인건비다. 국민이 주시는 소중한 돈이다. 정부 연구비에서 교수는 자신의 인건비를 어차피 지급받지 않으므로, 과제를 수주하지 못한 교수에게 학문적 타격은 있어도 경제적 타격은 없다. 대학원생은 다르다. 교수가 연구과제를 수주하지 못하면 대학원생의 생계가 어려워진다. 최소한 내가 속한 분야에 카르텔이라고 부를 만한 것은 없다고 생각한다. 백번 양보해 내가 모르는 카르텔이 있다 해도, 연구비 대폭 삭감으로 발생하는 피해는 정부에서 지목하는 카르텔 교수가 아니라 카르텔과 상관없는 대학원생에게 집중된다. 게다가 부모의 도움을 기대할 수 없는 경제적으로 어려운 대학원생이 첫 번째 피해자가 된다. 현재 지원받고 있는 과제는 내년 초에 종결된다. 요즘 고민이 많다. 나보다 의욕적이고 혁신적인 젊은 교수의 연구과제가 지원받는 것이 옳은 것이 아닐지, 그렇다면 이제 연구를 그만둘 시점이 마침내 내게 온 것이 아닐까 매일 고민한다. 연구비 수주의 전망이 어두워, 대학원에 진학할 예정이었던 학생에게는 다른 그룹으로 진학하는 것이 좋겠다고 알렸다. 교수들은 대학원생 받는 것을 이미 주저하기 시작했고, 정부 출연 연구소에서도 내년 비정규직 연구원 채용 규모를 이미 줄이기 시작했을 것으로 보인다. 예산 삭감의 피해는 대학원 진학을 꿈꾸던 학부생, 현 대학원생, 그리고 비정규직 연구원에게 집중된다. 연구비 삭감으로 과학자를 꿈꾸는 젊은 연구자가 줄어들면 우리나라 과학기술 발전에 큰 장애가 생기고 결국 큰 피해는 머지않은 미래에 우리 국민 모두에게 돌아올 게 분명하다. “계속 과학을 할 수 있게 해 주세요.” 큰 욕심도 없이 과학을 그냥 하고 싶어하는 젊은이들이 계속 그 길을 걷도록 도와주는 것이 정말 우리 사회가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힘든 일일까? 그동안 연구를 재밌게 하면서 정말 행복했고, 하루하루 발전하는 학생들을 바라보며 큰 보람도 느꼈다. 딱히 세상에 어떤 경제적 도움이 될지 알 수 없고, 노벨상을 받을 리도 없는 부끄러운 연구를 20여년 지원해 주신 국민 여러분께 머리 숙여 깊이 감사드린다. 그동안 정말 감사했어요.
[경향신문 2023.08.16] [김범준의 옆집물리학] 과학은 또 이렇게 한 걸음을 이어간다
2023-08-22경향신문 2023년 8월 16일에 실린 기사 발췌 출처: https://www.khan.co.kr/opinion/column/article/202308162016015 상온상압 초전도체 주장이 최근 큰 관심을 끌었다. 여러 그룹에서 시료를 제작해 실험하기도 했다. 현재 초전도체가 아닌 것으로 의견이 모아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김범준 성균관대 물리학과 교수 과학자로 살다보면 비슷한 경험을 하게 된다. 놀라운 결과가 큰 관심을 끌면, 여러 연구그룹이 재현실험을 시도하고, 설명하는 이론을 제안하기도 한다. 전에 들은 농담이다. 이론물리학자는 자기 이론만 믿고, 실험물리학자는 심지어 자기 실험도 믿지 않는다는 농담이다. 농담이지만 학계에 만연한 건강한 회의(懷疑)의 풍토를 어느 정도 담고 있다. 과학자는 늘 의심하는 것이 뼛속 깊이 자리 잡은 사람들이다. 긴 세월 회의와 검증의 시간을 꿋꿋이 견딘 것들이 모여 과학의 토대가 되고, 튼튼한 바닥이 최근의 논문을 의심하는 근거로 작동한다. 방금 출판된 결과를 진실이라 믿는 과학자는 거의 없어서, “재밌군. 어쩌면 사실일 수도 있겠어” 정도로 받아들인다. 검토와 회의, 비판과 재현의 과정이 이어지면서, 처음 결과가 굳건한 사실로 학계에 받아들여져 토대에 편입되기도 하고, 회의의 체에 걸러져 과학의 뒤안길로 사라지기도 한다. 튼튼한 과학의 나무는 회의를 양분 삼아 조금씩 천천히 자란다. 과학자도 사람이어서 실수할 수 있다. 하지만 충실하고 솔직하게 결과를 보고했다면, 딱히 책임을 묻지는 않는다. 물론, 고의로 결과를 조작하거나 하지 않은 실험을 한 것처럼 속인 논문은 다른 문제다. 학계의 신뢰를 크게 잃어 이 연구자의 이후 연구는 학계의 주목을 받기 어려워져, 학계에서 방출된 것이나 마찬가지가 된다. 이처럼 작동하는 자정의 힘은 상당히 크다. 누가 면밀히 조사할 가능성이 거의 없어도 대부분 과학자는 논문에 거짓을 담지 않아서, 다른 이의 논문을 일단 믿고 보는 것이 가능한 문화가 정착되었다. 고의적인 조작은 상호신뢰의 관행을 악의적으로 이용하는 나쁜 부정행위다. “다들 일단 믿어줄 테니 데이터를 좀 바꾼들 누가 알까”의 마음이 학계에 널리 퍼지게 되는 상황을 상상해보라. 아무도 믿지 못하면 과학은 없다. 연구결과는 주로 동료 평가를 거친 논문으로 공개된다. 논문이 투고되면 학술지 편집자는 같은 분야의 과학자를 두세 명 선정해 심사를 맡긴다. 트집 잡을 것이 없어 출판이 단박에 결정되기도 하지만, 대개는 익명의 심사자와 논문 투고자 사이에 비평과 답변이 오가며 논의가 보강되고 결과가 충실해지는 과정을 거친다. 심사를 통과해 출판되었다고 해서, 모든 과학자가 논문의 내용에 동의하는 것은 아니다. 정식 출판된 논문 중에도 가치가 없는 것이 많고, 후속 연구로 논문이 틀린 것으로 밝혀지는 일도 제법 발생한다. 심사를 거쳐 출판되었다는 것은, 논문이 학계에 공개될 수 있는 최소한의 기준을 만족했다는 정도의 의미다. 연구의 가치에 대한 학계의 평가는 이후에 이루어진다. 많은 사람들이 학회와 논문에서 자주 언급하고 인용하며, 논문에 기대어 많은 후속연구가 이어지면서, 같은 분야의 연구자들 사이에는 중요한 논문과 훌륭한 연구자에 대한 암묵적인 합의가 형성된다. 논문이 출판되기까지는 짧아도 몇달 정도가 걸린다. 공개 시점을 훌쩍 앞당기는 방법이 있다. 바로, 이번의 초전도 논문 같은 경우다. 동료 평가 없이 누구나 자유롭게 볼 수 있게 출판 전 온라인에 공개되는 논문을 프리프린트(preprint)라고 한다. 물리학 분야의 프리프린트는 주로 아카이브(arXiv)에 공개된다. 출판 이후에 논문을 아카이브에 올리는 학자도, 논문을 전혀 올리지 않는 학자도 많다. 또, 투고 전 학계의 반응을 미리 살펴 정식 투고 논문을 더 충실하게 하기 위해 프리프린트를 미리 공개하는 학자도 많다. 완결된 것은 아니어도 어느 정도 마무리된 결과를 모아 프리프린트를 아카이브에 올리는 것은 비난받을 일은 아니다. 이번 상온상압 초전도 프리프린트도, 다른 저자의 동의 등 다른 문제가 없다면, 아카이브에 먼저 공개한 것을 문제 삼을 수는 없다. 완성도가 아쉽다는 의견도 있지만, 아카이브는 원래 그런 논문도 올릴 수 있는 곳이다. 물론, 대다수 연구자는 프리프린트에도 정성을 기울인다. 엉성한 논문을 섣불리 공개하면 본인의 평판을 해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번의 프리프린트는 완성도의 문제도 있지만, 초전도체라면 꼭 보여야 하는 특성이 설득력 있게 제시되지 않았다는 것이 학계의 일반적인 의견으로 보인다. 어떻게 결론이 나든, 과학은 또 이렇게 한 걸음을 이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