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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2022.12.8] [김범준의 옆집물리학] 전파라 좋은 것도, 전자파라 나쁜 것도 아니다
2022-12-12경향신문 2022년 12월 8일에 실린 기사 발췌 출처: https://www.khan.co.kr/opinion/column/article/202212080300015 방송국 전파로 라디오를 들으며 전자파 유해성 기사를 읽는다. 음악을 듣게 해주는 전파는 고맙지만, 전자파는 왠지 피하고 싶다. 전파는 좋은 것이고, 전자파는 나쁜 것일까? 김범준 성균관대 물리학과 교수 전자파는 표준 용어가 아니어서 전자기파로 부르는 것이 맞다. 전파도 좀 이상하다. 자연에는 전파(電波)와 자파(磁波)가 따로 없어, 둘은 서로를 만들어내며 전자기파로 진행하기 때문이다. 영어로 radio wave인 전파를 직역해 라디오파라고 하는 것이 더 좋았을 것 같다. 전기만의 파동으로 오해하는 이는 없고, 이미 널리 쓰여 이제 와서 바꾸기는 어렵겠지만 말이다. 물리학은 자연을 객관적인 실체로 기술하고자 하지만. 어쨌든 인간은 인간의 언어로 자연을 기술한다. 전기(electricity)는 호박을 뜻하는 고대 그리스어 elecktron이 어원이다. 보석의 일종인 호박을 천으로 문지르면 곁에 놓인 작은 물체를 잡아당기는 현상이 전기의 어원이다. 자기(magnetism)는 자석으로 쓰이는 자철광의 산지 고대의 마그네시아(Magnesia)가 어원이다. 조선시대 참료의 시에 침개상투희유연(針芥相投喜有緣)의 글귀가 있다. 침개상투는 “바늘(針)이 자석에 이끌리고, 작은 겨자씨(芥)가 호박에 이끌리듯 서로 마음을 나눈 친구”를 뜻하는 고전 글귀에서 따온 얘기(정민의 <우리 한시 삼백선: 7언 절구 편>)라 하니, 동서양을 막론하고 전기와 자기는 오래전부터 알려진 자연현상이다. 대학생 때, 같은 방향으로 전류가 흐르는 두 도선 사이에는 서로 잡아당기는 자기력이 생긴다는 것을 배우고 고개를 갸웃한 기억이 있다. 첫 번째 도선에서 움직이고 있는 전자가 보면 두 번째 도선의 전자는 나란히 같이 움직여 정지한 것으로 보인다. 둘 사이에는 서로 밀어내는 전기력이 작용할 것 같은데, 왜 두 도선은 서로 잡아당길까? 금속 도선 안에서 양전하를 띤 원자핵들은 제자리에 가만히 머물러 있고 전자들은 도선 안을 자유롭게 움직인다. 첫 번째 도선에서 움직이는 전자가 두 번째 도선의 원자핵을 보면 어떻게 보일까? 아인슈타인의 특수상대론은 정지한 관찰자가 움직이는 물체를 보면 운동 방향으로 길이가 줄어든 모습을 본다는 것을 알려준다. 첫 번째 도선의 전자가 보면 두 번째 도선의 양전하를 띤 원자핵들은 더 조밀하게 배열되어 더 높은 양전하 밀도를 가진 것으로 보이게 된다. 한편, 두 번째 도선의 전자들은 첫 번째 도선의 전자와 함께 나란히 같은 속력으로 움직여 정지해 있는 것으로 보여서 두 번째 도선의 음전하 밀도에는 길이 수축 효과가 없다. 결국, 첫 번째 도선의 전자가 힐끗 옆 도선을 보면 그곳의 양전하 밀도가 음전하 밀도보다 더 커보이게 되고, 두 도선 사이에는 서로 잡아당기는 힘이 존재하게 된다. 전류가 흐르는 두 도선 사이에 작용하는 자기력은 전하 사이의 전기력에 특수상대론의 길이 수축 효과를 적용한 결과다. 전파는 라디오파라고 부르는 것이 더 나아보이고, 전자파 대신 전자기파로 부르는 것이 맞다. 주변 물리학자들이 더 아쉬워하는 것이 속도와 속력이다. 중력, 전자기력처럼 힘력(力)이 들어 있는 용어 중에는 크기와 방향을 모두 가진 벡터가 많다. 한편, ‘온도’나 ‘습도’를 보면 알 수 있듯이, ‘도’자를 돌림자로 갖는 양들은 크기는 있지만 방향을 갖지 않는 스칼라가 많다. 내가 동쪽 방향으로 힘을 주어 물체를 밀 수는 있어도 온도를 동쪽 방향으로 바꿀 수는 없는 일이다. 다른 물리량과 비교하면, 속력을 벡터로 그리고 속력의 크기를 속도로 부르는 것이 더 자연스러워 보이지만 우리나라에서는 현재 거꾸로다. 바꾸자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이미 정착되어 널리 이용되는 과학의 용어에도 맥락과 역사가 담겨 있어 용어의 갑작스러운 변경은 큰 혼란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전파라고 좋은 것도, 전자파라고 나쁜 것도 아니다. 전자파는 학술용어가 아니어서 전자기파라고 부르는 것이 맞고, 전파는 방송에 사용하는 파장이 긴 전자기파를 일컬을 뿐이다. 어쨌든 우리가 특정 용어를 서로 다른 구체적인 맥락에서 사용하는 것이 흐름으로 이어지면 과학의 개념에 가치의 판단을 담게 되는 것은 늘 주의할 일이다. 고립계의 엔트로피가 늘어난다는 사실로부터 엔트로피는 나쁜 것이니 줄여야 한다는 당위의 주장을 이끌어낼 수는 없는 것처럼 말이다. 과학은 자연을 말하지만 인간의 언어로 말한다. 과학 용어가 담긴 이야기를 들을 때면 그 안에 담긴 사실과 가치를 늘 저울질할 일이다.
[경향신문 2022.11.10] [김범준의 옆집물리학] 때로는 막고 때로는 돕는, 물리학의 간섭
2022-11-14경향신문 2022년 11월 10일에 실린 기사 발췌 출처: https://www.khan.co.kr/opinion/column/article/202211100300005 내 일에 간섭하지 마! 무언가를 하려는데 다른 이가 막아설 때 우리가 하는 말이다. 우리 삶에서 간섭은 이처럼 방해나 훼방의 뜻을 가질 때가 많다. 하지만 물리학의 간섭은 이와 달라, 서로 만나 줄어드는 소멸(destructive)간섭도, 만나서 커지는 보강(constructive)간섭도 있다. 물리학의 간섭은 때로는 막고 때로는 돕는다. 김범준 성균관대 물리학과 교수 빛과 소리를 포함한 모든 파동은 진행하며 서로 간섭한다. 긴 줄의 양 끝을 두 사람이 나눠 잡고 시간을 맞춰 동시에 위아래로 휙 움직이자. 양 끝에서 만들어진 두 파동은 반대 방향으로 진행해 한가운데에서 만나고, 그곳에서 줄은 위아래로 큰 폭으로 떨린다. 이처럼 결이 맞은 두 파동이 더해져 진폭이 늘어나는 것이 보강간섭이다. 두 파동이 만나 이루는 합성 파동의 진폭이 0이 될 수도 있다. 한 사람이 줄 끝을 위아래로 휙 움직여 파동을 만드는 바로 그 순간, 다른 쪽 끝을 잡고 있는 사람은 거꾸로 줄을 아래위로 휙 움직여 파동을 만들 때 그렇다. 위아래가 뒤집힌 모습의 두 파동이 진행해 가운데에서 만나면 덧셈이 아닌 뺄셈이 되어 그곳에서 진폭이 0이 되는 소멸간섭이 일어난다. 결이 딱 맞는 둘이 만나면 늘어나지만, 결 맞지 않아 많이 다른 둘이 만나면 거꾸로 줄어든다. 반대 방향으로 진행해 가운데서 만난 두 파동은 잠깐의 만남과 간섭 후에 제 갈 길을 계속 이어간다는 것도 중요하다. 이처럼 파동은 만남을 쉬이 잊어, 시간이 지난 둘의 만남은 아무런 흔적을 남기지 않는다. 빛은 입자일까. 파동일까? 한눈팔지 않고 곧게 달려가는 빛의 직진과 빛의 반사는 빛을 입자로 간주한 페르마의 최소시간 원리로 설명할 수 있다. 또, 매질의 경계에서 일어나는 빛의 굴절은 물에 빠진 사람을 구하러 모래사장 위를 달리다 바다에 뛰어들어 헤엄치는 해변 구조요원을 닮아, 이것도 빛을 입자로 보아 설명할 수 있다. 빛의 입자설을 강하게 주장한 사람이 바로 고전역학을 완성한 뉴턴이다. 그의 권위로 빛의 입자설이 힘을 얻고 있던 17세기 말, 빛의 파동설이 등장해 점점 세를 불리게 되었다. 빛이 마치 당구공과 같은 입자라면 둘이 만나 사라질 리 없다. 하지만 두 빛은 서로를 상쇄해 소멸간섭을 보이기도 한다. 소멸간섭은 빛을 입자가 아닌 파동으로 간주해야 이해가 쉽다. 당대의 물리학자들이 빛의 입자설에 고개를 갸웃한 이유는 더 있다. 정말로 빛이 크기가 있는 입자라면, 당신의 얼굴에서 반사해 내 눈으로 진행하는 빛의 입자는 거꾸로 내 얼굴에서 반사해 당신의 눈으로 향하는 빛의 입자와 도중에 부딪쳐 방향을 바꿀 수 있기 때문이다. 빛이 정말로 크기를 가진 입자라면 우리 둘은 서로를 동시에 또렷이 마주 볼 수 없다. 소리도 마찬가지다. 소리가 입자의 운동이라면 어떤 일이 생길까? 내 입에서 떠난 소리의 입자가 당신의 입에서 나를 향해 다가오는 소리의 입자와 만나면 방향을 바꾸거나 속도가 줄어, 동시에 말하는 둘은 서로의 말을 제대로 들을 수 없게 된다. 소리가 입자의 운동이라면, “밥 먹었니? 오버” “응, 먹었어. 오버”처럼, 한 번에 한 사람만 말할 수 있는 무전기처럼 대화가 이어질 수밖에. 둘이 마주보고 소곤소곤 대화를 연이어 나눌 때 물리학의 파동을 떠올릴 일이다. 소리와 빛은 이처럼 파동으로 존재해, 각각 반대 방향으로 진행한 두 파동은 두 사람 사이의 공간 어딘가에서 만나 간섭한 후 곧이어 제 갈 길을 계속 이어간다. 서로를 마주 바라보며 함께 속삭일 수 있는 이유는 빛과 소리가 파동이기 때문이다. 정겨운 시선과 속 깊은 대화를 나누는 두 사람의 만남은 각자의 삶에 흔적을 남기지만, 둘의 경이로운 만남은 만남을 쉬이 잊는 파동에 빚지고 있는 셈이다. 물리학뿐 아니라 우리 삶에서도 간섭이 꼭 부정적인 것만은 아닐 수 있다. 내 생각과 다른 누군가의 말을 들을 때, 그의 목소리도 결국 물리학의 파동임을 떠올릴 일이다. 쇠귀에 경 읽듯, 투명 매질을 통과하는 빛처럼, 흔적 없이 마음을 스쳐지나갈 수도 있지만, 당신의 간곡한 부탁에 내 마음의 결을 맞추면 안 될 일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하자. 막는 간섭도, 돕는 간섭도 있다. 어떤 간섭은 막기도 한다. 끔찍한 재난으로 결 맞아 함께 슬픈 모두의 마음을 돌아보며, 재난을 미리 막을 수 있었던 간섭의 부재에 분노한다. 결 맞은 마음 모아 더 커진 목소리로, 다시는 이런 일이 없게 함께 힘을 모으자.
물리학과 카르스텐 로트 교수 참여 국제공동연구단, 활동은하에서 방출되는 중성미자의 증거 발견
2022-11-04물리학과 카르스텐 로트 교수 참여 국제공동연구단, 활동은하에서 방출되는 중성미자의 증거 발견 물리학과 카르스텐 로트 교수 연구팀이 참여하고 있는 국제공동연구단이 먼 거리에 있는 활동은하에서 방출된 고에너지 중성미자의 증거를 최초로 발견했다. 카르스텐 로트 교수가 참여 중인 아이스큐브 국제공동연구단은 이러한 내용을 과학기술분야 국제학술지 ‘사이언스’(IF: 63.83)에 발표했다. ‘메시에 77(M 77)’이라는 이름으로도 알려진 활동은하 ‘NGC 1068’은 인류에게 가장 익숙하고 또 가장 많이 연구된 은하이다. 1780년에 최초로 확인된 이 활동은하는 지구로부터 4천 7백만 광년 떨어져 있으며 지상에서도 쌍안경을 통해 관측할 수 있다. 그러나 Seyfert Ⅱ형으로 분류되는 활동은하 NGC 1068은 블랙홀이 있을 은하 중심부가 지구에서는 가려져 보이지 않는다. Seyfert Ⅱ형 은하에서는 은하 중심 방향으로 나선형을 그리며 떨어지는 밀도 높은 가스 또는 입자들에서 생성된 높은 에너지 방사선이 은하핵 주변의 토러스 구조 형태의 먼지에 가려진다. 빛과 다르게 수많은 중성미자는 밀도가 매우 높은 환경을 쉽게 벗어날 수 있으며 우리은하 밖에 퍼져있는 물질이나 전자기장에 의한 영향을 거의 받지 않고 지구에 도달할 수 있다. 따라서 중성미자는 우주에서 가장 극한 환경을 지닌 천체가 어떻게 작동하는지에 관한 질문을 푸는 열쇠가 될 수 있다. 아이스큐브 국제공동연구단은 최근 거대 중성미자 망원경을 통해 NGC 1068에서 온 테라전자볼트(TeV) 이상의 에너지를 지닌 80여 개의 중성미자를 관측하였다. 이 관측을 통해 국제공동연구진은 중성미자 천문학의 실현에 큰 한 걸음을 내딛었다고 밝혔다. 위스콘신대학교 매디슨의 프란시스 할젠(Francis Halzen) 교수는 “여러 중성미자의 관측은 해당 중성미자들을 만들어 낸 확인이 어려운 천체의 내부를 들여다 볼 수 있다”고 말했다. 독일 뮌헨 공과대학교의 박사후연구원인 테오 글라우흐(Theo Glauch) 박사 역시 “NGC 1068은 미래 중성미자 망원경들의 기준점이 될 수 있을 것”이라며 “중성미자는 NGC 1068 은하를 완전히 새로운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게 해줄 것”이라고 말했다. 물리학과 카르스텐 로트 교수 연구팀은 지난 2013년부터 아이스큐브 국제공동연구단의 정규 구성원으로 참여하고 있다. 아이스큐브 건설 초기부터 국제공동연구단에서 활동 중인 카르스텐 로트 교수는 “10년이 넘는 데이터 수집을 통해 Seyfert Ⅱ형 은하로부터 중성미자가 방출된다는 획기적인 발견을 했다”며 “이러한 발견은 우리가 우주에서 관찰할 수 있는 강력한 에너지를 지닌 입자들의 기원을 이해하는 데에 도움을 줄 것”이라고 밝혔다. 카르스텐 로트 교수 연구팀은 남극점에 위치할 차세대 검출기 프로젝트에도 참여하고 있으며 아이스큐브 검출기의 업그레이드를 위한 새로운 검출기 교정 시스템을 양산 중이다. 한국연구재단의 지원을 통해 개발 및 양산 중인 이 시스템은 2천여 개 이상의 소형 카메라와 LED 광원들을 사용하여 검출기를 구성하는 남극 빙하의 성질을 더욱 정밀하게 연구하고자 설계되었다. 이를 통해 이번 중성미자 근원의 확인과 같은 발견의 기회가 더욱 많아질 것으로 기대된다. ※ 논문명: "Evidence for neutrino emission fom the nearby active galaxy NGC 1068," The IceCube Collaboration: R. Abbasi et al. ※ 저널: Science, DOI:10.1126/science.abg3395